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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플릿

꼬리가 물어온 인연

#1.

 

 

 

빛 늑대 일족의 수장을 맡은 지 몇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나는 여러모로 지쳐 있었다.

 

 

 

전대 수장의 급작스러운 공석, 차기 후보의 수장 등극. 짧게 요약할 수 있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주변의 늑대들은 당연한 일이라며 당황한 나를 다독여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더 당황했고, 더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것 이라고. 하긴 누가 쉬이 받아들이겠는가. 그 정정하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전대가 죽었으니 말이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고수했다. 매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이 우리들의 최선 이었다. 도무지 머리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수장의 죽음을 위해서였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진실에서 도피했다.

 

 

 

수장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목걸이가 피범벅 된 채로 발견된 곳은 그의 향만이 맴돌고 있었다. 단서라고는 목걸이 주위에 어딘가로 향하는 것 같은 발자국과 핏방울들이 전부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추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 유일한 단서들이 절벽에서 끝났다는 것 이다. 그 곳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무얼 떨어트려도 소리 한 점 들리지 않는 곳 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곳을 ‘블랙홀’이라 불렀다. 종종 배신자의 시체나 조용히 처리할 것이 있을 때 찾던 곳 이었으니 익숙했다. 어린 늑대들이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별거 아닌 곳 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중 그 어느 누군가가 수장의 집이 될 줄 알았을까. 이런 볼 품 없는 곳이 당당하고 용맹하던 그의 마지막 쉼터가 될 줄 누가 예상했을까.

 

 

 

 

"…….전대."

 

 

 

 

혹시 몰라 절벽 주변도 꼼꼼히 살폈지만,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향은 절벽에만 머물러 있었다. 전투를 하다가 절벽에 떨어진 것 일까? 그럼 다른 이의 흔적은? 아니면 지병이 있었나? 전부 아닐 것 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냥? 이곳은 늑대들의 영역이다. 깊은 숲 속에 자리하는 늑대들만의 공간. 그러니 인간이 침입했는데 모를 리가 없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는가.

 

 

 

 

딱히 전대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이상한 늑대였다. 늑대이면서 이상주의자였고 무엇보다 평화를 사랑했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지냈다. 다른 종족은 그런 전대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겁쟁이 왕이라고 비웃곤 했다. 그러나 그와 싸워 이긴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힘이 있는 자였다. 나조차 이기지 못했으니깐.

 

 

하지만 그는 썩 좋은 수장은 아니었다. 책은 최대한 멀리했다. 글자가 3줄 이상이면 읽지도 않았다. 언제나 내게 모든 걸 맡기는 무책임에,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 심지어 수장이라는 자가 언제나 내게 일을 맡기고 어디론가 놀러 다녔다. 그래, 문자 그대로 그는 한량이었다. 좋은 곳은 눈 씻고 찾아 볼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만……. 아무튼 갑작스러운 공백 때문에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예전부터 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중요한 안건도 전부 내가 처리했으니 어려울 건 없다. 오히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수장이 되었으면 곤란할 지경 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표면상과 실질적인 칭호는 다르다. 아직 인정하지 못한다는 보수파와 이참에 불온한 싹을 골라야 한다는 진보파는 매일 다퉜다. 긴장과 피 냄새가 요동쳤다. 그런 곳에서 언제나 둘 사이에 껴있어야 하는 나는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골머리를 썩이며 나날이 스트레스를 누적하고 있었다. 최악이다.

 

 

 

 

 

그리고 도저히 참지 못해 잠시 바람을 쐬러 간다며 도망쳤다.

 

지긋지긋했다.

 

수장의 자리도, 넘치는 서류도, 전부 다.

 

나를 옥죄어 오는 모든 것들이.

 

 

 

 

 

콰직-!

 

 

 

 

"!!!!!!!"

 

 

 

 

풀숲 뒤로 누군가가 꼬리를 세게 잡은 탓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정확히는 물어버린 것 인가. 도대체 어떤 간이 부어버리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온 동물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이곳이 흙빛 늑대의 영역인 것을 모르는 동물이 산속에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확인을 위해 등 뒤에 있던 풀숲을 헤쳐 보았다. 사락, 청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보인 것은 작고 붉은빛에 양쪽 눈의 색이 다른…….

 

 

 

 

"므앙?"

 

 

"……. 토……. 끼?"

 

 

 

 

……. 토끼였다. 산 속에 수많은 동물이 살지만 토끼가 산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제법 무리를 지어서 살았지만 근래에는 전부 인간에게 잡혔다고 했다. 그나마 살고 있는 토끼들은 수도 적기에 내가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새로 영역을 침범해 무리를 만들었다는 소리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깊은 산에 토끼가 산다는 것이 이상하다. 먹잇감이 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숲 속에 작은 토끼가 있는 것 인가.

 

 

 

 

"앗 당신이 그 폭신하고 멋있는 아이의 친구야?"

 

 

"폭신하고……. 멋있, 는…….?"

 

 

"응! 이거!!"

 

 

 

 

뒤로 쪼르륵 달려와서는 다시금 꼬리를 꽉 하고 잡았다. 약간의 고통이 있었지만, 작디작은 생명체의 힘이라 그런지 크게 아프지 않았다. 그나저나 꼬리를 친구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꼬리는 그냥 신체의 일부일 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그냥 꼬리일 뿐이다. 기쁘면 살짝 붕붕 거리고, 우울하면 조금 쳐지고, 놀라면 조금 펑 하는 그런 꼬리.

 

 

 

 

"……. 흠, 꼬리가 뭔지 모르는 건가?"

 

 

"꼬리? 이 친구 이름이 꼬리야?"

 

 

 

 

글렀다. 완벽하게 오해를 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렇지 않아도 지끈거리던 머리에 또 다른 지끈거림이 추가 되었다.

 

 

 

 

"……. 후, 그래. 이 친구 이름이 꼬리야. 그나저나 이런 산 속에 왜 있는 거야?"

 

 

"응? 어……. 아! 맞아! 주인님이랑 놀러 왔는데, 케이지가 열려서 달려 나오니깐……. 사라지셨어."

 

 

 

 

사라져? 네가 사라진 게 아니고?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아이를 82%정도 파악했다. 말로는 케이지에서 나오자마자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마 아닐 것 이다. 분명 처음 보는 환경에 흥분한 나머지 혼자 달려 나갔을 테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인을 잃은 것이리라.

 

 

 

 

"그래, 뭐……. 그렇구나. 아무튼 밤이 늦었으니깐 주인에게 돌아가도록 해. 나도 이제 가야하니깐."

 

 

"응, 안녕!!!"

 

 

 

 

생각보다 쉽게 헤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칭얼거리면서 가지 말라던 가, 갈 곳이 없다고 할 줄 알았다. 하긴 그냥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다. 저렇게 귀엽고, 작고, 또 어여쁜 아이이니 주인도 애타게 찾고 있을 것 이다. 기르는 애완동물에 대한 애착이 큰 인간들도 많다. 요새는 동물을 지키자고 목소리 내는 사람도 많아졌으니 말이다. 그러니 분명 경찰서에서, 혹은 이 산 입구 근처에서 아이를 찾아보고 있을 것 이다. 어떻게든 찾아 낼 것 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나라도 그럴 테니깐. 그렇게 주인과 재회 하고나면 이제 이런 산 따위는 금방…….

 

 

 

 

"아참!!! 이름이 뭐야아?!?!"

 

 

 

 

스쳐가는 인연이니 저 아이는 곧 나에 대해 잊을 것 이다. 그러나 나만큼은 잊고 싶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내게 해방감을 주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런 욕심도 없이 나로 대해준 귀엽고 고마운 작은 친구. 물론 처음 보는 사이일 테니 그럴 만도 하지만. 아니, 아니다. 애초에 늑대한테 누가 이렇게 겁 없이 대할까. 그건 저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걱정하는 것 같았다. 목을 가다듬고 다시 소리치는 것도 참 귀엽다. 이렇게 마음을 주면 안 되지만……. 너무 귀엽다.

 

 

 

 

"이- 름- 이- 모- 야아?!?"

 

 

"…….알베르!!"

 

 

"엥?"

 

 

"알베르라고 해!! 너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아이, 아니 아크는 활짝 웃으며 제자리에서 폴짝거린다. 귀가 올라갔다 내려가며 팔랑거리는 모습이 꼭 이제 막 날기 시작하는 새 같았다. 참 가볍고 귀엽게 뛰는 모습이 보기에는 좋았다. 그러나 저러다가 다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 내 생각을 알아 준건지 멈춘 채로 제자리에 똑바로 선 아크가 흠흠 하고 헛기침하며 힘껏 소리친다.

 

 

 

 

"내 이름은- 아크!! 나중에 또 봐아, 알베르으!!!"

 

 

"푸흣……. 그래! 또 만나! 아크!!"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볍다. 구름 위를 걷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어쩐지 살짝 붕 뜬 것 같은 느낌은 싫지만은 않았다. 잠깐의 일탈 이였지만 덕분에 생각보다 즐거웠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바람 쐬게 만들어준 멍청이들이 조금은 용서 되었다. 그러고 보니 지끈거리던 두통도 어느새 사라졌다. 저 아이를 만났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고마워, 아크. 나 혼자만의 소중한 추억이겠지만 소중히 간직하도록 할께.

 

 

 

 

 

 

#2.

 

 

 

작고 빨간 그 아이가 보고 싶다. 지나가다 보았던 앵두가 그 아이를 닮았다. 숨통이 끊긴 적의 핏물 색이 그 아이를 닮았다. 아, 물론 그 아이가 더 맑고 귀여운 색 이였지만. (이 말을 했을 때 왜인지 주변에서 아프냐는 소리를 들었다.)

 

 

노을빛이 너를 닮았다.

네가 노을빛을 품었다.

 

세상의 붉음이 너를 닮았다.

 

온 세상에 붉음이 모여

너를 가리키고 있었다.

 

너의 붉음에 눈이 멀었다.

내 세상은 온통 붉음 이였다.

 

붉음에 눈이 먼 나는

붉음을 그리워한다.

 

붉은 그 아이가 보고 싶다.

 

 

 

 

 

 

#3.

 

 

 

붉음과 안녕을 고한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체감 상으로는 몇 달, 아닌 몇 년이 된 것 같지만 말이다. 그 아이가 주었던 따스함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 건지, 그전처럼 화도 쉽게 나지 않는다. 그냥, 그냥 무지한 늑대들이 조금 불쌍해 보일 뿐 이었다. 그러니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저런 모지리 들을 위해 내가 수장이 된 것이니까.

 

 

 

"대장, 요새는 버럭 하는 일이 줄었군요. 역시……. 저희가 일을 잘…….!"

 

 

"내가 감정을 잘 다스리는 거다."

 

 

"헤……. 헤헤 그렇져……. 역시 대장입니다! 감정까지 완벽한 통제를! 굉장하세요!!!"

 

 

"비행기 그만 태우고……. 곧 정찰조가 돌아오니 보고나 하라고 해."

 

 

 

웃으며 나가는 테슬라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감정까지 완벽한 통제를 한다.', '대단하다'라……. 글쎄. 모르겠다. 완벽한 삶이란 무엇일까. 어릴 적에 나는 항상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또래 아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이였다 . 그런 삶이 조금은 즐거웠다. 하고 싶어서 했을 뿐 이였고, 잘하니깐 한 것 이다. 내게 있어서 당연한 일을 했는데 칭찬 받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기쁜 일이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어른들의 더럽고 얼룩진 탐욕에 눈을 썩힌 것은. 아름다웠던 시절이 금이 가고, 탁한 색으로 물들어간다. 이런 것을 꿈꾸고 동경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시시하고 추악한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탁해진 현실은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어른들의 칭찬도 주변의 기대도 전부 부담스럽다. 원하지 않았는데 해야 하는 삶이라니……. 지겹다. 너무 지겹고, 역겹다.

 

 

 

 

"대장!!!"

 

 

 

 

쾅!

 

 

 

 

"…….내가 분명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하라고 했을 텐데."

 

 

"앗 그 어 음 저……. 으으……. 죄송함다……."

 

 

"후……. 됐어. 그래서? 무슨 일 인데 그렇게 숨넘어가게 달려와."

 

 

"앗 그게 말임다!"

 

 

 

 

숨을 고르고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는 태오를 기다려 주었다. 워낙 성질이 급한 아이라 이 말을 하다가 저 말이 튀어 나오는 등의 자잘한 실수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제발 천천히 말하라고 타일렀더니 이제는 알아서 숨을 고르고 있다.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지. 고삐 풀은 망아지 같던 녀석이 성장했다는 점에서 조금 감동했다. 일족의 수장으로서 일원의 성장은 언제나 기쁜 법이니 말이다.

 

 

 

 

"아까 순찰을 나갔는데 말임다, 빨간색 조금만 애가 막 대장의 이름을……."

 

 

"뭐?"

 

 

"아니 그 이상 하잖슴까? 이런 산에 대장 이름을 가진 녀석은 없잖슴까. 그래서…… 힉, 대, 대장??"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 그게 일단 상처도 많고 기절을……. 히이익!!!!"

 

 

 

 

이대로 잡은 멱살을 뜯어버릴 것만 같았다. 팔에는 핏줄이 솟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기 때문이다. 핑핑거리는 시야 속에서 심장 주변이 울컥 거린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부글부글하고 끓는 느낌이 느껴진다. 어째서일까? 무척 화가 난다. 살면서 이렇게 화를 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작 그 날 한 번 본, 스쳐가는 녀석인데 왜 이리 신경이 쓰이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억지로라도 데려올 걸 그랬다. 하긴 그 작은 아이가 이런 험한 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아는 이가 하나 없는 척박한 곳인데. 주인을 만나지 못한 것 일까.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나보다. 내 잘못이다. 나 때문에 다쳤다. 아이가, 아크가, 나 때문에…….

 

 

 

 

"ㄷ……. 대장!! 저……. 정, 정신을, 큭…….!"

 

 

"내가……. 분명 아무거나 사냥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뱃가죽이 등골에 붙어서 간이 밖으로 튀어 나왔다보군. 요새는 죽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하나?"

 

 

"아, 아니 대장 그게 아니고 이……. 일단 진정을!! 그게 아니고 제가 주워 온 검다!!!!"

 

 

"……. 뭐?"

 

 

"여우족들이 괴롭히기에…….! 근데 막 대장 이름도 들리고 그래서…….!!! 그래서 제가 주워 오는 건데 상처가 많아서 기절을 ㅎ……. 커헉!"

 

 

 

 

잡은 멱살을 분에 이기지 못하고 내팽개쳤다. 쿠당탕 하고 넘어진 태오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그저 시선을 깔아서 바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눈을 마주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 무척이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공포 때문인지 차마 말을 못한 채 떨고 있었다. 분명 두려울 것 이다. 하긴 이정도로 화내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을 테니. 무엇보다 내가 그런 작은 아이에게……. 아무튼 지금은 미안하지만 태오를 위로할 때가 아니다.

 

 

그 작은 아이가, 아크가 다쳤다.

 

 

 

 

 

 

 

"아크!!!!"

 

 

"알, 베르……."

 

 

 

 

온 몸이 피투성이이다. 오만방자한 여우들이니 저보다 작고 힘없는 토끼를 장난감처럼 굴었겠지. 힘을 가진 이는 그 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자만은 파멸을 자초 할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여우는 왕이 될 수 없다. 이 산에는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고, 왕은 그들을 지키고 보호해야한다. 싸움이 나면 중재해야하고, 산의 안전을 위해 몸을 던질 각오도 있어야한다. 물론 이런 점이 아니더라도 그걸 눈 뜨고 참지 않을 테지만.

 

 

 

 

"아크……. 괜찮아?"

 

 

"우응……. 아까……. 여우들이 막……. 내가 알베르 친구라는데……. 안 믿고……. 막 꼬리 친구를……."

 

 

 

 

그 놈의 꼬리. 왜 그렇게 꼬리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충분히 귀엽고 말랑한 꼬리인데. 동글동글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늑대나 여우, 고양이 혹은 강아지 뭐 이런 애들처럼 긴 꼬리가 가지고 싶은 것 일까? 지금이 좋은데. 동그랗고, 부드러운 눈 같아서 보는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걸 알고나 있는 걸까. 아, 방금 너무 변태 같았나. 아무튼 지금이 가장 잘 어울리는데.

 

 

 

 

"내가 아크 친구야?"

 

 

"그럼……. 아니야?"

 

 

 

 

파르르 떨리는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힌다. 귀엽다. 너무 귀여워서 놀려주고 싶다. 잔뜩 괴롭히고 잔뜩 안아서 위로해주고 싶다. 삐져서 맘껏 때려도 좋으니 아크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다. 하지만 행복한 상상은 여기서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아크의 상태가 말이 아니니 빨리 안정을 취하게 도와줘야 할 것이다. 그러니 첫 번째는 마음의 진정. 불안하면 상태는 더 안 좋아지니 말이다.

 

 

 

 

"친구 맞아. 아크랑 나는 친구야."

 

 

"헤헤……. 그치?"

 

 

"응, 아크. 역시……. 갈 곳이 없는 거지?"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주인님이……."

 

 

"……. 그럼 주인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랑 있자. 다들 널 좋아할 거야. 아닌 척 서툴어도 착한 애들이니깐."

 

 

 

 

대장!! 이라는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마음 여린 녀석들이 벌써 눈물을 보이고 있다. 장담할 수 있는데 이런 애들 사이라면 분명 잘 지낼 것 이다. 일족의 수장으로서가 아니고 우리 애들은 그래도……. 착하니깐. 좀 바보 같지만. 아니 많이 바보 같지만.

 

 

 

 

"정말……. 그래도 괜찮아?"

 

 

"우린……. 친구잖아. 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구해 줄께. 그러니 안심하고 있어."

 

 

"치……. 너만 멋진 말 하냐……. 나도……. 나도 멋진 말 할 거야. 나도 알베르가 위험하면 구해 줄 거야."

 

 

"하하 그래. 기대할게."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싱긋 웃는다. 저 미소가 좋다. 저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 아크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항상 품에 안고 위험한 모든 걸 없애서 털끝이라도 상하지 않았으면 싶다.

……. 어쩌면, 조금은, 아주 살짝은 상처 입히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아크 푹 쉬고 있어. 뒷일은 내가 할께."

 

 

"우응……. 이따…….봐……."

 

 

"그래 아크. 잘자"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 같다. 염원하던 아이를, 아크를 손에 넣었다는 짜릿함이 온 몸을 관통한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심장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입을 맞추어다. 맞닿은 입술이 촉촉하다. 기절한 아이를 데리고 뭘 하냐며 야유가 들려왔지만 상관없다. 입맞춤이라는 것이, 키스가 이리도 달콤하고 중독되는 것이던가? 씁쓸했던 마음에 흘러넘칠 정도로 기쁨이 요동친다. 달디 달아서 미칠 것 같지만 아무렴 좋다.

 

 

하지만 이 기쁨을 만끽하기 전에…….

 

 

 

 

"쓰레기는 치워야지."

 

 

"예 대장님. 준비해둘까요?"

 

 

"아니, 나 혼자면 충분해."

 

 

"하지만 대장……."

 

 

 

 

걱정한 듯이 말하는 테슬라에게 조소를 섞인 미소를 지어주었다. 눈이 마주친 테슬라가 흠칫 하며 시선을 피한다. 녀석의 동공에 비친 얼굴이 어쩐지 낯설고 어색한다. 자신이 이리도 감정을 갈무리 하지 못했던가. 한심하다는 생각 뿐 이다.

 

 

 

 

"……. 너희한테 추한 꼴 보이기 싫다."

 

 

"예……. 뭐……. 대장……. 그……. 적당히……."

 

 

"뭐."

 

 

"아닙니다. 쓸고 오십시오."

 

 

 

 

배웅을 받으며 마을을 나서는 것은 익숙하다. 그러나 오늘은 어색하다. 평소라면 아무 감정도 없을 테지만……. 지금은 즐겁다 못해 짜릿하다. 스스로가 불러 온 재앙에 짓눌린 채로 헐떡일 여우를 생각했다. 역시 즐겁다. 아크를 위해 머리 하나쯤은 뜯어서 가져갈까. 아니, 놀라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래 털을 가져다가 옷을 만들어주자. 높은 산이니 작은 아크는 분명 추위를 탈 것이다. 남은 털로는 따뜻한 침대를 만들 것 이다. 내 방에 아크의 보금자리도 만들어주고……. 꼬리는 버리자. 그 좋아하는 꼬리는 나로 충분하니깐. 아, 아크.

 

 

 

 

"벌써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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