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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

Sweet Nightmare

몽의 정의란 무엇일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악몽은 단순하게 두려움을 가져오는 꿈일 것이다. 커다란 몬스터가 나와 저를 잡아먹는다던가, 어두운 숲 속에 갇혀 나갈 수 없다던가, 아니면 징그러운 벌레들이 나와 온 몸을 뒤덮는다던가. 그 주체는 언제나 끔찍함과 두려움에서 나왔다.

하지만 알베르에게 있어 악몽이란 행복과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 어떤 것보다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마약처럼 저를 그 안으로 끌어당겼다. 알베르는 이것이 더욱 질이 나쁘다고 인지했다.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참으로 잔인한 악몽이지 않은가. 그저 꿈으로만 끝나지 않고 제 모든 생활을 통제한다니.

알베르는 실소를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뭉개지는 두개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의 곁에 서있던 부하는 적을 몰살하며 웃음 짓는 그를 소름끼치는 듯 쳐다보았으나 알베르에게 있어 그것은 그저 단순한 눈빛에 지나지 않았다. 저에게 하등 영향을 끼치지 않았기에.

뜨거운 피가 온 몸을 적시고 이것이 현실임을 알렸다. 하지만 알베르는 마치 무언가에 미친 것처럼 멍하니 제 몸을 뒤덮는 새빨간 색을 바라보다 축축함을 느끼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유능한 대령은 반쯤 미친 상태에서도 완벽하게 제 사명을 완수하더니 군대를 이끌고 전지로 돌아갔다. 여전히 꿈과 현실의 경계가 뭉그러진 채였다.

그는 돌아가서 몸을 가볍게 씻어내고 곧장 침대로 향했다. 전쟁에 혹사된 몸이 노곤함을 띄고 또다시 꿈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 밑으로 가라앉아 그 깊이를 모를 즈음이 되면 네가 나온다. 내 곁에서 행복하게 웃는 네가 나온다. 알베르는 그럴 때마다 마음속이 행복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끼고 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네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머나먼 과거의 그것이었지만 행복했다. 그 악몽은 즐거움만 가져와서 제 마음을 쿡쿡 쑤셔댄다. 진정한 악몽으로서 모습을 뒤바꾸는 순간은 단 하나였다.

꿈에서 깨어날 때, 저는 절망으로 가라앉는다.

알베르는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아크의 미소를 머릿속에 그리다 손에 잡히는 물병을 던져버렸다. 현실의 저는 그것을 볼 자격이 없었다. 너를 죽이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그 자격이 있을까. 침대 안에서 잔뜩 웅크린 알베르의 눈가에서 물기가 배어났다.

 

이 악몽은 내가 맛볼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었다.

 

* * *

 

아크는 전투가 끝난 전장을 거닐며 생존자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주 임무는 살상에 있었으나 스스로는 남은 사람들을 구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제 손에 스펙터가 깃든 이후 더욱이 강해진 그 의식을 흐리며 말없이 탐색하던 그는 전투가 치러지던 중에는 향하지 못했던 숲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시간 전까지 타오르고 있었던 나무에서 새나온 연기들이 그의 시야를 흐리게 가리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전투의 상흔은 크게 나타났다. 나무들은 그 허리가 꺾여 한 줄기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키 작은 잡초들은 흙에서부터 뽑혀 나와 뿌리를 내보인 채였다. 점점 더 그 상흔의 근원지로 다가가던 아크는 수많은 시체 가운데 익숙한 군복을 찾아냈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머뭇거리면서 다가간 아크는 죽은 듯 쓰러져있는 몸을 보고 몇 번 손을 쥐었다 펴더니 불안함의 한숨과 동시에 몸을 살짝 들어 올려 뒤집었다. 신원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으나 그는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두근, 두근.

심장의 고동이 크고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피가 차갑게 식어갔다.

그의 뒷모습에서 예상했듯 땅 위의 몸은 알베르의 것이었다. 과거의 친우이자 현재의 적. 떨리는 손끝이 심장께에 닿고, 이내 손바닥이 그 위를 덮었다. 움직이는 않지만 온전하게 누워있는 모습에 죽은 줄 알았더니 미약한 고동은 아크의 손까지 울리고 있었다. 아크는 귀를 알베르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미약한 숨소리가 평화롭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잠에 빠진 듯 했다.

아크는 몇 분 동안이나 그 숨소리를 듣고 있다가 퍼뜩 이것이 혹여 함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알베르의 손목을 가지고 있던 밧줄로 묶었다. 전장에서 멍하니 정신을 빼고 있었다는 사실은 치명적이었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키며 꽉 묶인 손목을 확인하고 그 몸을 흔들었다.

평범한 상태라면 일어날 것이 분명한 손짓에도 알베르의 눈꺼풀은 그저 닫혀만 있었다. 조금 당황해 몇 번 더 흔들어본 아크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 알베르의 상태를 보며 입술을 깨물다 그를 끌어당겨 안았다. 기절한 것인지, 아니면 잠에 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저주에 당해있는 것인지 의식이 없는 알베르는 돌덩이와 같았으나 그에게는 스펙터의 팔이 있었다. 최대한 상처 입히지 않게 조심하며 들어 올리자 아크는 문득 알베르가 상당히 말라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아크는 주둔지로 향하려다 그 후의 처지가 마음에 걸려 다시 발을 멈추고 제가 혼자 주거하는 공간으로 발을 옮겼다. 현재의 행동은 질책 받을 수 있을만한 것이었으나 아크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에 들어와서야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알베르를 내려둘 수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두어 번 볼을 두드렸더니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도 이내 다시 되돌아가서 고른 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아크는 그 옆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잠시 후 그는 알베르의 겉옷을 살짝 벗겨냈다. 밧줄은 이미 풀린 지 오래였다.

모든 작업을 끝내고 침대 옆에 슬쩍 앉자 잔뜩 마른 것이 눈에 띄는 알베르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어떤 꿈을 꾸고 있기에 그렇게나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걸까. 아크는 손을 들어 알베르의 이마 위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마치 이것만으로 생각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가능할 리가 없지.”

아크는 한숨과 함께 괜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 알베르의 볼도 한 번 꼬집고 침대에 잠시 엎드렸다. 그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부른 비숍은 몇 시간 내에 온다고 하니 잠에 들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알베르가 혹시 깨어날까 싶어 주위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는 알베르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며 혼란을 숨기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알베르의 존재가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큰 전투가 이루어졌음에도 그 군복을 입고 있는 시체는 없었으며, 폭발이 일어났던 듯 뒤집혀진 땅 한가운데에 홀로 존재했던 알베르는 마치….

생각을 이어가던 아크가 한 개의 결과와 똑똑, 하는 소리에 벌떡 고개를 치켜들었다. 비숍이 온 모양이었다. 그는 알베르가 깨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문쪽으로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야말로요.”

아크는 인자하게 웃어보이는 비숍에게 마주 웃음짓고 그녀를 곧장 알베르에게 데려갔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서요. 아크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비숍은 긴급한 상황을 이해한듯 빠른 속도로 마력을 끌어올려 알베르의 위를 덮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녀는 곤혹스러운 목소리로 정보를 읊어냈다.

“저도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저주도 느껴지지 않고 정말 수면을 취하는 중이에요.”

아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할 수 없다면 다른 이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 착잡함이 가슴 속에 쌓여간다. 결국 방법은 알베르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며칠이고 곁에 머무르며 알베르를 간호했다. 간호라기보다는 그의 기상을 기다린다는 것이 맞겠지만, 계속 그 방 안에 머물렀다. 이따금 링거를 갈아주고 가끔씩 적셔진 수건으로 얼굴과 팔다리를 닦아줄 뿐이었다. 전장에 나가 싸워도 모자랄 시간에 아크는 제 행동을 이어갔다. 그저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양.

아크는 스스로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 * *

 

알베르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아크는 오늘도 그의 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스펙터가 깃든 손의 컨트롤 능력을 높이기 위해 잡다한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알베르는 소리 없이 눈을 떠서 몸을 일으켰다. 아크가 그 기척을 알아차린 것은 제 얼굴 바로 앞에 알베르가 다가왔을 때였다. 알베르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가왔다.

쪽.

수분이 부족해 메마른 입술이 아크의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

아크는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이 귀여운 듯 해맑게 웃어 보인 알베르가 손을 들더니 아크의 볼을 감싸 쥐었다.

“오늘은 팔이 이런 걸 보니 내 죄책감을 열심히 자극하려는 거구나. 그럼 이곳은 베르딜이야? 그러기에는 너무 깨끗해 보이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네, 하고 말하는 듯한 어투로 알베르는 스스로의 상처를 후벼 팠다. 아크는 제 옛 친구가 말한 것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해맑은 웃음이 저린 고통과 후회를 담고 있어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 너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크는 책장을 넘기지도 못하고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알베르만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과거에 보았던 웃음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 속에서는 절절한 고통이 흘러나와 제 몸까지 잠식했다. 알베르가 멍하니 굳어있는 아크에게 다가와 그 손을 잡았다. 스펙터의 형태를 띤 쪽의 손이었다.

“차라리 내가 이 손에 찔려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침대를 반 쯤 빠져나온 알베르는 날카로운 손의 끄트머리를 매만지다 그 끝에 입을 맞췄다. 그 행동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입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신을 숭배하듯 조심스러웠다. 모든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결국 알베르가 자진해서 제 손 끝을 꾹 눌러 피를 보이자 아크는 눈물을 흘려냈다. 색이 다른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그렇게나 가슴 아파 알베르가 잔뜩 슬픈 얼굴을 하며 아크의 눈물을 살짝 닦아냈다. 하지만 손끝에 맺혀있던 핏방울 탓에 그의 얼굴이 제 피로 더럽혀지자 알베르는 슬픈 듯 기쁜 듯, 기괴한 웃음을 피워냈다.

“아크, 울지 마.”

울지 말고 웃어줘. 내 꿈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을 보여 줘야지. 응? 알베르는 물기가 배어나오는 눈 위에 입을 맞추고 따라하라는 듯 빙긋 웃었다. 아크는 알베르가 원하는 대로 따라 웃기보다 머뭇거리며 알베르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따뜻한 온기가 알베르의 볼에 닿고, 그는 기묘한 표정을 짓더니 그 손을 잡아챘다.

온기가 느껴졌다. 통증도 느껴졌다. 아니, 통증은 느껴졌나? 알베르는 혼란에 빠져 아크의 손을 잡아 제 손 위에 올리고 꼭 잡아봤다. 제 손바닥을 감싸는 온기와 촉감은 마치 현실 같았다. 퐁퐁 떨어지는 아크의 눈물은 현실감각을 저 땅의 끝까지 내려두었지만 이 감촉만은 현실과 동일했다. 그는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굳어서 흔들리는 동공을 그대로 내비칠 뿐이었다.

아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알베르를 꼭 끌어안았다. 저를 그렇게 구해주고 어째서 다시 죽이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제 과거의 친우는 이제 모든 것에서 버림받아 있었다. 언제든 목숨을 바치겠다 말했던 위대한 다르모어의 군대는 알베르를 죽을 수밖에 없는 전장으로 그를 보냈고, 그는 버림받았다. 이제 유일하게 그를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남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왔다. 옅었던 증오가 사라지고 슬픔이 그곳을 차지했다. 알베르는 저를 안아오는 아크의 향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허리를 감싸 끌어 안아봤다. 그 옷감을 손 안에 가득 쥐자 꿈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이 현실로서 다가왔다.

알베르의 기묘한 미소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현실과 꿈 모두에서 댐을 만들어 가둬두었던 눈물이 결국은 터져 나왔다. 아크는 소리 없이 울기 시작한 알베르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러는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 * *

 

“네가 그곳에 올 줄은 몰랐어.”

“…마지막의 마지막에 불렸으니까.”

그래. 알베르는 조용히 답하더니 아크를 힘 줘서 끌어안았다. 군대는 내가 죽었다고 알고 있을 거야. 이제 그들도 나를 이용하려 하지 않겠지. 먼저 버린 처지니까. 담담하게 튀어나오는 목소리에 아크는 대답하는 대신 그 손을 잡고 물었다.

“이제는 쉴 마음이 들어?”

“…아주 많이.”

“다행이다.”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이제는 조금만 쉬자, 우리. 아크의 목소리가 흐리게 터져 나왔다. 알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플 월드에는 전투가 많지 않으니까 그곳의 해변이라도 가서 편하게 쉬자. 그렇게 몇 달만 있다가 돌아오는 거야. 너랑 나랑, 같이. 같은 편에 서서. 알베르는 고개를 끄덕이다 아크와 눈을 맞추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그 전에.”

“응?”

“…키스, 해 봐도 돼?”

한 번만. 알베르는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던 현실에서의 키스를 떠올리고 망설이다 물었다. 멍하니 굳어있던 아크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쥐락펴락 움직이다 결국 먼저 알베르의 옷깃을 잡고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느릿하게 맞물린 입술 사이로 숨결이 느껴졌다. 그저 제 입술을 알베르의 것 위에 내려두었던 아크는 목까지 빨갛게 물들인 채 살짝 떼어냈다 다시 한 번 꾹 도장 찍듯 누르고 떨어져 나왔다.

“한 번 만은, 아쉬우니까….”

알베르는 그 모습에 과거와 같은, 하지만 더욱 맑아진 웃음을 터트리며 아크를 품에 가득 껴안았다. 아크는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는 스펙터의 형상을 뒤로 물렸지만 알베르는 상관하지 않는 듯 그저 꼭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과거에 했던 것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미소 지었다. 그 길은 비록 역경의 너머에 있었으나, 결국 두 사람은 행복의 길을 찾아냈다.

감정은 뒤얽히고 친우의 사이는 끊어졌다. 더욱 단단한 결속을 찾아 헤매며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를 인식했다. 스스로를 인정했다.

 

행복이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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